Note For Futurism

 

Note For Futurism

 



Boccioni, 공간에서의 특이한 연속성의 형태, 1913

 

 

     미술계의 오랜 중심지였다. 천년이 넘는 세월동안 모든 문명과 모든 예술의 발상지이자 시원점이었으며 모든 학문의 중심이었단 말이다. 이럴 수 있는가. 서양 역사 속 문화의 주도적 역할을 맡았던 이탈리아는 근대로 오면서 그 설 자리를 잃었다. 예술도 마찬가지, 19C 이후로 예술의 중심지는 프랑스가 되었고 이탈리아는 점점 문화의 변방지가 되었다. 그러나 그들에겐 전통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고 과거의 영광을 되살리자는 야심이 있었다. 이제 현대 미술계는 이탈리아를 재조명 해야 한다. 초기추상의 흐름은 이탈리아로 와서 미래주의Futurism로 변모된다. 1909년 2월, 마리네티F.Marinetti는 드디어 선언한다.

 

 

"새로운 형태의 미, 즉 속도의 미…(중략).

달리는 경주용 자동차는 사모트라케의 승리의 여신보다 더 아름답다"

 

  

    이탈리아의 미래주의는 조형적으로는 입체주의Cubism의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예전의 모든 주제들을 대신하여 강철과 오만과 열기와 속도의 뜨거운 삶을 표현하자"고 말하는 이들은 근대세계의 역동적 고양을 주장한다. 20세기 초는 놀라운 발견의 시대. 앙리 베르그송Henri Bergson은 자신의 저서 '창조적 진화'에서  생의 충동Life Impulse를 이야기한다. "죽음은 더욱 위대한 일반적 생의 진보를 위해 바람직하고 받아들일만한 것이다"  죽음은 더이상 생의 끝이 아니다.  독일의 표현주의 사조에도 영향을 준 이런 사상가들의 주장은 타나토스Thanatos, 에로스Eros, 추(醜), 파괴같은 전통적으로 부정적으로 인식된 개념들을 미래주의 예술에서도 필수불가결한 요소로 수용하게 만들었다. 

 

     이제 미래주의자들에게는 전쟁도 찬양받아 마땅하다. 그들은 총알과 대포의 괴력 또한 역동적인 힘의 위력이노라 찬양한다. 현대는 바로 그런 역동적이고 위력적인 움직임과 기계문명과 산업사회의 동력이 주도한다. 예술은 바로 이런 부분을 표현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하이젠베르크Heisenberg도 이야기하지 않던가? 불확정성의 원리. 시공간에 따라 변함없이 고정되는 물질이라는 것은 없다. 모든 것은 움직임으로써 그 운동에너지에 의해 결정된다. 힘Energy이 모든 것이다. 

 

     미래주의는  입체주의의 미학에 따른 분석적 태도를 갖지만 이들은 역동성을 시각적으로 구현하는데 초점을 둔다.  화면의 구성 요소는 오로지 움직임과 역동성의 느낌만을 남긴 채 추상적인 형태로 시각화된다. 이들 미래주의자들은 동시성과 연속적인 이미지를 표현하기 위해 영화의 원리를 도입하기 시작한다. 마치 영화Cinema가 1초의 24컷 정도의 장면이 연결되어 진짜 움직임을 영사하듯, 이들의 작업 또한 이미지의 연속적인 반복이 마치 영화의 그것처럼 표현된다.


 

E. Muybridge, 인간의 움직임연구 No.133, 1887

 

     이드웨어드 머이브릿지Eadward Muybridge의 사진 작품은 일종의 실험과도 같다. 사실상 사진은 우리가 보지 못하는 구조들의 면모를 폭로한다. 사진은 육안으로 본 것만을 재생하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덧붙여서 눈으로 보지 못하는 모든 것을 보게 한다. 그렇기 때문에 불완전한 인간의 눈보다는 사진의 눈을 더욱 신뢰 한다. 사진의 발명이 가져다준 혁명은 바로 이것이다. 

 


.Etienne-Jules Mare, 움직이는 인체의 고속촬영, 1886

 

     이 작품이 머이브릿지의 사진작업에 영향을 받은 마레의 미래주의 작품이다. 그 역시 찰나동안 움직임을 포착해 낼 수 있는 사진작업을 선호했다. 그는 저 움직임을 만들어내기 위해 앞쪽엔 흰색 타이즈를, 반대쪽엔 배경과 같은 검은 타이즈라는 짝짝이 타이즈를 모델에게 입혔다고 하는데 믿거나 말거나.

 

Balla, 발코니위를 뛰어가는 소녀, 1912

 

    Balla의 작품은 좀 더 흥미롭다. 그는 큐비즘적인 추상적 요소에 속도의 미를 표현하려고 시도하는데, 움직임을 표현하려는 그 작업은 이미지와 선의 반복적인 형태로 나타난다. 이러한 경향은 Severini에서도 볼 수 있다.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언제나 그 역동적인 움직임의 공간적 동시성이다.

 



Boccioni, 공간에서의 특이한 연속성의 형태, 1913


 

     하지만 개인적 감상으론  미래주의의 백미는 바로 이 작품. 조각으로서 연속적인 느낌과 움직임을 표현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아는가. 뭐랄까, 정말로 흩날리는 시간이 가시화 된 느낌을 자아내는 효과이다. 시간과 함께 변하는 움직이는 조각. 물론 끝없이 움직이는 조각의 형태를 작업으로 이어가야한다는 선배 조각가의 의지는 후에 Mobile 조각의 대부가 된 콜더가 이어간다나 어쨌다나.

 

 

by Circe | 2006/10/19 02:37 | R.S.V.P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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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에치쓰 at 2006/10/26 00:33
데이터 정리 용으로 쓰는가봐요'ㅂ'????
이해 하기 힘든게 더 많다..;;; 시간내서 다 읽어볼테다
Commented by Circe at 2008/10/26 03:49
데이터 정리용이라기보단 걍 시험공부하다 딴 짓거리 한 흔적인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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